처음 초전도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어려운 과학 용어처럼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새지 않고 100% 그대로 전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봇대와 송전선에서 사라지는 전기 손실이 거의 없어지고, 자기부상열차가 도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병원 MRI 장비가 더 선명한 영상을 빠르게 찍어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초전도체 기술이 실제로 기업과 주식, 그리고 미래 산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미국 증시에서 초전도체 관련 기업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한때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LK-99 이슈 때문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연구 검증 과정에서 LK-99는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결론에 가까워졌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초전도체라는 기술 자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초전도체는 에너지, 의료, 국방, 양자 컴퓨팅 등 여러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계속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미국 증시에서 “초전도체만 하는 회사”를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초전도체를 제조하기보다는, 초전도체를 활용한 장비를 만들거나 관련 재료를 공급하는 형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기술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연구비도 크게 드는 분야이기 때문에 투자를 생각한다면 더 천천히, 더 꼼꼼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전도체가 왜 중요한가
초전도체는 특정 온도 이하로 식으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을 말합니다. 전기가 흐르는데 저항이 없으니, 열로 손실되는 에너지가 사실상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또 초전도체 안에서는 자기장이 물질 안으로 잘 들어오지 못하는데,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초전도체는 여러 첨단 기술의 핵심 재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초전도체가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력·에너지: 전력 손실을 줄이는 초전도 케이블, 초전도 모터와 발전기, 에너지 저장 장치
- 의료: MRI 같은 고성능 영상 장비, 고자기장 의료기기
- 과학 연구: 입자 가속기, 핵융합 실험 장치
- 운송: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차세대 교통수단
- 국방: 함선 추진, 자기장 기반 탐지·은폐 기술
- 양자 컴퓨팅: 초전도 큐비트를 사용하는 양자 컴퓨터
현재 상온·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고온 초전도체라고 불리는 물질들도 실제로는 액체질소 정도의 낮은 온도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과거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더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고온 초전도(HTS) 테이프’나 ‘HTS 자석’은 전력망, 핵융합, MRI, 연구용 장비 등에 조금씩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중요한 초전도체 관련 기업들
미국 증시에는 초전도체를 직접 제조하고, 그 기술을 바로 사업에 활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초전도체를 이용한 장비를 만들거나, 관련 전력 솔루션을 제공하는 형태입니다. 그중에서 투자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초전도 기술의 실제 쓰임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American Superconductor(AMSC) – 가장 직접적인 대표 주자
American Superconductor, 줄여서 AMSC는 이름부터 초전도체를 떠올리게 하는 회사입니다. 이 기업은 전력망 솔루션, 풍력 발전 시스템, 해군 함정용 전력·자기장 기술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온 초전도(HTS) 와이어와 케이블을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점에서, 상장사 가운데 초전도체와의 연관성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합니다.
AMSC가 초전도체를 활용하는 주요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력망 솔루션: 초전도 소재를 활용한 장비로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제품을 개발합니다. 예를 들어, 전류가 갑자기 과도하게 흐를 때 이를 제한하는 ‘고장 전류 제한기’ 같은 설비를 통해 대규모 정전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해군·국방 분야: 함선이 바다에서 내뿜는 자기장을 줄이거나 조절하는 시스템 등에서 초전도 기술이 사용됩니다. 이런 기술은 잠수함이나 군함이 상대방의 탐지 장비에 덜 포착되도록 돕는 용도로 연구·개발되고 있습니다.
- 풍력 발전: 풍력 터빈 내부에서 전력을 변환하고 제어하는 시스템을 공급하는데, 여기에는 고효율 전력 전자 장치가 포함됩니다. 직접적으로 초전도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AMSC가 가진 전력 기술 역량이 기반이 됩니다.
- 핵융합 파트너십: 미국의 핵융합 스타트업인 Commonwealth Fusion Systems(CFS) 등과 협력하여 고온 초전도 와이어를 공급하거나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CFS가 추진 중인 SPARC 같은 핵융합 장치에는 강력한 초전도 자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진전될수록 AMSC 같은 기업의 기회도 커질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매력은 상장사 중에서 초전도체 자체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핵융합, 차세대 전력망 같은 미래 에너지 분야가 실제 상용화 단계로 가까워질수록, 시장이 AMSC에 다시 관심을 가질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 요소도 분명합니다. 회사 규모가 거대하지 않고, 일부 핵심 프로젝트나 정부·군 관련 계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 사업이 지연되거나 계약이 축소될 경우 실적 변동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새 기술을 실제로 현장에 설치하고 운영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가가 단기간에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Bruker(BRKR) – 초전도 자석을 쓰는 연구 장비 기업
Bruker는 직접 초전도체 재료를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초전도 자석이 들어가는 정밀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입니다. 핵자기 공명(NMR) 장비, 일부 MRI 시스템, 고자기장 연구 장비 등 최첨단 분석기기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초전도 기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학 연구와 산업용 분석 장비가 주력 사업입니다.
- 이 장비들에는 강력하고 안정적인 자기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전도 자석이 핵심 부품으로 들어갑니다.
- 초전도체 기술이 발전하면 자석의 크기를 줄이거나, 더 높은 자기장을 구현하면서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되어 장비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Bruker는 초전도체만 바라보고 사업을 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과학 연구와 고급 의료·분석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전도체 기술의 장기적인 발전과 함께 천천히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간접 관련 기업 정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MRI, 양자 컴퓨팅에 초전도체를 쓰는 대형 기업들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초전도체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초전도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 의료 영상 장비: General Electric(GE), Siemens Healthineers, Philips 등은 MRI 장비 시장의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MRI 장비 안에는 항상 초전도 자석이 들어가지만, 이들 회사의 사업 영역은 의료기기 전반에 걸쳐 있어 초전도체만 보고 투자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 양자 컴퓨팅: IBM, Google 등은 초전도 큐비트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칩과 회로는 극저온 초전도 상태에서 동작합니다. 다만 이 사업이 아직 초기 단계이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기 때문에 “초전도체 관련주”라는 이유만으로 투자 대상을 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대형 기업들은 초전도체를 중요한 기술 요소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하나의 테마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사업 구조가 지나치게 복합적입니다. 초전도체 그 자체보다는 종합적인 기술·비즈니스 역량을 보고 판단하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초전도체 관련 투자에서 살펴볼 점들
초전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에 관심을 가질 때는, 단순히 “미래 기술”이라는 말에만 이끌리기보다는 몇 가지를 차분하게 따져보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기업을 살펴볼 때 유용한 기준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력과 특허: 그 회사가 어떤 초전도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경쟁사 대비 얼마나 강점이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고온 초전도 테이프, 자석 설계, 냉각 기술, 전력 변환 기술 등 구체적인 분야에서 어떤 특허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 재무 구조: 초전도체 관련 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따라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현금 흐름, 부채 비율, 자본 조달 능력이 갖춰져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적용 시장의 성장성: 그 회사의 기술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 시장이 앞으로 실제로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어느 정도 시점에 가능할지, 초전도 전력망 프로젝트가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추진되는지 등의 흐름을 보는 식입니다.
- 정책과 규제 환경: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 첨단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은 초전도체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국방·안보와 연관된 기술의 경우 수출 규제나 보안 이슈가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 테마 변동성: LK-99 사례처럼 실험 결과 하나, 논문 하나만으로도 시장의 기대가 과열되거나 실망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단기간에 급등락하는 흐름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업의 실제 사업 내용과 기술 발전 속도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초전도체는 분명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술입니다. 전기가 거의 새지 않는 전력망, 더 작은 크기와 더 높은 성능의 MRI와 연구 장비, 열차가 떠서 달리는 교통수단, 양자 컴퓨터처럼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계산 능력 등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이 실제로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초전도체 관련 기업을 바라볼 때는 낙관적인 미래와 함께, 현재 기술 수준과 사업 현실을 동시에 떠올리며 한 걸음 물러나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