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한동안 전고체 배터리 이야기가 쏟아졌던 적이 있습니다. 배터리 회사 이름과 생소한 화학 용어들이 한꺼번에 나오니, 처음에는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자료를 찾아보고 기업 발표를 살펴보다 보니, 전고체 배터리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앞으로의 에너지 산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위험한 실험 장비 대신 안정적인 새 장비를 도입하는 것처럼, 배터리도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바뀌려는 과정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말 그대로 안에 들어 있는 전해질이 액체가 아니라 고체인 배터리를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휴대폰, 노트북, 전기차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쓰고 있습니다. 액체 전해질은 이온이 잘 움직여서 성능이 좋지만, 온도 변화나 충격에 약하고, 누설이나 화재 위험이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 액체 대신 고체 물질을 사용해서, 더 안전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전 속도도 빠른 배터리를 만들려는 기술입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액체를 고체로 바꾸는 수준이 아닙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제조 공정, 장비까지 거의 모든 요소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술을 둘러싼 경쟁은 배터리 셀을 만드는 회사뿐 아니라, 원재료를 공급하는 소재 기업, 그리고 공장에서 실제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 기업까지 매우 넓은 범위로 퍼져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주목받는 이유

전고체 배터리가 기대를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안전성, 에너지 밀도, 그리고 충전 속도입니다.

먼저 안전성입니다. 액체 전해질은 휘발성이 있고, 열에 민감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배터리가 손상되거나 과열되면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화재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완전히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둘째는 에너지 밀도입니다. 같은 크기와 무게 안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으면, 전기차는 더 멀리 달리고, 스마트폰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메탈 음극과 같은 고용량 소재를 사용하기에 유리하며, 이론적으로는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셋째는 충전 속도입니다. 전고체 전해질이 제대로 개발되면, 전기차를 주유소에서 연료를 넣듯 짧은 시간 안에 충전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연구 단계에 가깝고, 실제 제품에서 어느 수준까지 구현될지는 앞으로의 개발 성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전고체 배터리의 핵심 기술 방향

전고체 배터리라고 해서 모두 같은 재료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 계열의 고체 전해질이 연구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황화물계 전해질입니다. 이 계열은 이온 전도도가 높아 성능 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신 수분과 반응성이 높아, 공기 중 수분과 만나면 유해한 기체가 발생할 수 있어 생산 환경을 까다롭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만큼 설비와 기술 수준이 중요합니다.

둘째, 산화물계 전해질입니다. 세라믹 재료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안정성이 높지만, 딱딱해서 전극과의 접촉을 잘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말의 입자 크기, 표면 처리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등 여러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폴리머계 전해질입니다. 고분자 재료를 이용한 방식으로, 유연성이 좋고 기존 공정과의 호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온도에 따라 성능 변화가 크거나 이온 전도도가 낮은 문제가 있어, 여러 보완 기술이 함께 연구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방식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용도나 사용 환경에 따라 여러 기술이 공존할 가능성도 큽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용, ESS(에너지 저장 장치)용, 소형 IT 기기용 등 제품별로 다른 전해질이나 조합이 선택될 수 있습니다.

배터리 셀을 만드는 기업들의 움직임

전고체 배터리와 직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업들은 배터리 셀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이들은 자체 연구소에서 전해질, 전극, 셀 구조를 묶어서 한 번에 최적화해야 하므로, 가장 큰 책임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SDI는 오래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전략 과제로 삼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왔습니다. 수원에 파일럿 라인으로 알려진 S-라인을 마련해, 실제 공정에 가까운 환경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시험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과 리튬메탈 음극 적용에 힘을 싣고 있으며, 2020년대 후반을 목표로 상용화 준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용화 목표 시점은 내부 사정과 시장 환경, 기술 성숙도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방향 자체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한 가지 방식에만 집중하기보다, 폴리머계와 황화물계를 함께 연구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상용화가 빠를 수 있는 폴리머계 전고체 배터리와, 성능 측면에서 더 높은 목표를 가진 황화물계를 병행하는 식입니다. 또한 여러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지분 투자도 진행해, 고체 전해질 포트폴리오를 넓게 가져가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SK온은 모회사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해외 기술 기업과 손을 잡고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입니다. 특히 미국의 솔리드파워와 협력하며 황화물계 전해질을 기반으로 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다듬고 있습니다. 아직 비상장사이지만,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대와 함께 전고체 기술 확보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의 재료를 준비하는 소재 기업들

배터리는 화학과 재료 과학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기판 등 각 부품을 담당하는 소재 기업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특히 새로운 재료와 조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존 2차전지 소재 기업들이 이 흐름에 어떻게 적응하는지가 큰 관심사입니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은 광물 자원 확보부터 양극재, 음극재 생산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에서도 리튬메탈 음극재, 고용량 양극재, 그리고 고체 전해질 관련 기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전고체 전해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술 파트너를 늘리고 있으며, 포스코퓨처엠은 기존 양극재·음극재 기술을 전고체 환경에 맞게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는 하이니켈 양극재로 잘 알려진 기업입니다. 하이니켈 양극재는 니켈 비율을 높여 에너지 밀도를 키운 소재인데, 전고체 배터리에서도 높은 에너지 밀도를 얻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전기차용 고성능 양극재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어, 전고체용 전용 양극재를 개발할 때도 경험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SKC는 동박 사업에서 출발해, 점차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동박은 전극을 지지하는 얇은 구리판으로, 배터리의 기본적인 뼈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더해 SKC는 실리콘 음극재와 같은 고용량 소재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음극재는 전고체 배터리와 결합될 경우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지만, 팽창 문제와 수명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SKC는 이 같은 문제를 완화하는 기술을 연구하면서, 고체 전해질 관련 소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일연마는 이름처럼 연마재와 세라믹 소재에 강점을 가진 회사입니다. 산화물계 고체 전해질은 세라믹 기반 물질이 많기 때문에, 고순도 세라믹 분말과 초정밀 가공 기술이 중요해집니다. 제일연마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세라믹 분말 기술을 바탕으로 산화물계 전고체 전해질에 필요한 소재를 공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수화학은 화학 기업으로, 황화물 관련 기술을 오래 축적해 왔습니다.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의 핵심 원료 중 하나가 황화리튬(Li2S)인데, 이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이수화학은 관련 사업을 전문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분할 회사를 통해 전고체 전해질 분야에 진출하고 있으며,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 소재 공급망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잠재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공장을 준비하는 장비 기업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이 성공하려면, 실험실에서 좋은 성능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량으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장비 기업입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액체 전해질 기반 배터리와 생산 공정이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장비가 필요합니다.

하나기술은 국내에서 잘 알려진 2차전지 장비 업체입니다. 셀을 조립하고 활성화하는 장비를 주로 공급하며, 각형 배터리 제조 장비에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본격적으로 양산 단계로 들어가면, 셀 구조와 공정이 달라지는 만큼 맞춤형 장비가 필요해집니다. 하나기술은 이런 변화를 기회로 삼아 전고체 전용 혹은 전고체 대응 장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엔티와 씨아이에스는 전극 공정 장비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배터리는 전고체든 액체 전해질이든, 기본적으로 양극과 음극 전극을 만들고 이를 적층하거나 감는 과정을 거칩니다. 따라서 전극 코팅, 건조, 압연 등 전극 공정 장비의 중요성은 여전히 큽니다. 특히 씨아이에스는 전고체 전해질을 생산하는 장비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어, 소재와 공정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회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바라볼 때 알아둘 점

전고체 배터리는 앞으로 에너지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현재는 아직 개발 단계와 시범 생산 단계가 섞여 있는 과도기입니다. 연구 발표나 기업의 계획만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기술 개발이 초기 단계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부 기업은 2020년대 후반을 상용화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상용화 시점은 기술적 난관, 원가 문제, 안전 규제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황화물계, 산화물계, 폴리머계 중 어느 계열이 어떤 용도에서 주류가 될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불확실성이 큽니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 실험실에서는 잘 작동하더라도, 대량 생산 단계에서 수율을 유지하고 비용을 낮추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각 기업이 발표하는 로드맵은 목표일 뿐이고, 실제로 그 시점에 얼마나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이 분야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파일럿 라인을 만들고,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는 데에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재무적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룹 차원의 지원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도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기술 접근 방식도 다양합니다. 어떤 회사는 황화물계에 집중하고, 어떤 회사는 폴리머계와 산화물계를 동시에 연구합니다. 소재 기업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전고체용 소재를 파고들고, 장비 기업은 기존 장비를 개량하거나 새로운 공정을 위한 장비를 개발합니다. 이런 다양한 접근은 전체적으로는 기술 발전 속도를 높이지만,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성공과 실패의 폭을 크게 만듭니다.

자동차 회사들의 영향력도 매우 큽니다.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체들은 전고체 배터리를 단순히 사다 쓰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개발에 참여하거나 스타트업과 협력하면서 주도권을 잡으려 합니다. 이들이 어느 배터리 회사와 손을 잡고, 어떤 전고체 기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하면,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업을 살펴볼 때는 그 회사가 어떤 전고체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지, 상용화까지의 구체적인 계획은 어떤지, 재무 상태는 안정적인지, 그리고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강점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따져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에는 항상 기대와 위험이 함께 따라오므로, 화려한 표현보다는 실제 준비 상황과 기술의 현실적인 한계를 같이 살펴보는 시선이 중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