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기업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른 건 식탁 위의 반찬이었습니다. 김치와 고추장, 조미료처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아온 제품들 뒤에 누가,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경영자가 전통적인 식품 회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꾸어 가는지를 알게 되면서, 식품 회사가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미래 기술과 환경, 건강까지 함께 고민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대상홀딩스의 임세령 부회장입니다.
임세령 부회장은 대상그룹 창업 가문 출신이면서도 단순히 가업을 물려받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사업 구조와 방향을 바꾸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경영자입니다. 공식 직함은 부회장이지만,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신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식품 회사라는 기본 틀 위에 바이오, 헬스케어, 푸드테크 같은 새로운 영역을 더해, ‘미래에도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식품을 넘어서는 경영 철학
임세령 부회장의 경영 방향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식품을 넘어선 성장’입니다. 단순히 많이 팔고, 싸게 만들고, 유명한 브랜드를 유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식품을 기반으로 건강과 환경,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는 생각입니다.
이 철학을 조금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첫째, 기존의 식품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습니다. 발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바이오 소재, 단백질과 영양에 초점을 맞춘 건강기능식품,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식물성 단백질 식품,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푸드테크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상품 몇 개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체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둘째,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김치와 고추장을 비롯한 여러 제품을 ‘K-푸드’의 한 축으로 키우면서, 해외 소비자들의 식습관과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각 지역에 맞게 공급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셋째,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ESG 경영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면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 보호, 사회공헌, 투명한 경영 구조를 함께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넷째, 내부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도 관심이 큽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효율적인 업무 방식,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수평적인 조직 문화 등을 도입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신사업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변화들
이런 방향성은 실제 사업 확장 과정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상홀딩스와 그 계열사들은 기존의 양념, 장류, 김치와 같은 전통 식품에서 출발해, 점점 더 건강과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들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과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단백질과 영양 균형을 강조한 제품, 연령대와 건강 상태에 따른 맞춤 영양식,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맛이나 포장 디자인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영양 설계, 원료 선택, 섭취 편의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식물성 식품과 대체육 분야도 중요한 축입니다. 전통적으로 고기 소비가 많았던 시대에서, 이제는 환경 문제와 동물복지, 건강 이슈로 인해 고기 섭취를 줄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대두, 완두콩, 곡물 등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대체육과 비건 제품을 개발하고, 기존 브랜드와 결합해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품들은 단순히 채소 위주의 식단이 아니라, 실제 고기와 비슷한 식감과 맛을 구현하려고 다양한 식품 공학 기술이 활용됩니다.
또한 발효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 사업 역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발효는 원래 장류나 김치 생산에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기술인데, 이 기술을 영양소나 기능성 성분 제조, 바이오 소재 생산 등으로 확장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키우려는 전략입니다. 발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정 아미노산, 효소, 프로바이오틱스 등은 건강기능식품과 식품 첨가물,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세계 시장을 향한 K-푸드 전략
국내에서 잘 알려진 김치와 고추장, 각종 양념들은 이제 해외에서도 점점 더 익숙한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대상그룹은 종가집 김치, 청정원 브랜드 제품 등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여러 지역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한국에서 인기 있는 제품을 그대로 내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각 나라의 식문화와 조리 방식,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 소금과 당류에 대한 인식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국별로 레시피를 조정하거나 포장 단위를 바꾸고, 현지 음식과 어울리도록 사용하는 방법을 함께 제안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김치를 그대로 반찬으로 파는 것뿐 아니라 샐러드 토핑이나 샌드위치 재료로 활용하는 레시피를 소개하는 식의 현지화 전략이 동반됩니다.
이처럼 임세령 부회장이 이끄는 방향은 K-푸드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각 나라의 식탁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하나의 식문화로 정착시키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환경과 사회를 함께 생각하는 ESG 경영
최근 기업 경영에서 빠질 수 없는 화두가 ESG입니다. 대상홀딩스 역시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한 경영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환경 측면에서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나 친환경 소재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설비를 개선하거나, 공정 효율화를 추진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됩니다. 이는 단순히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과 규제 대응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는 협력사와의 상생,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한 지원 활동, 취약계층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식품 기업이라는 특성을 살려 먹거리 지원이나 영양 교육과 같은 형태의 사회공헌도 이루어집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을 강조하고,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투자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너 일가가 있는 기업일수록 의사결정 과정과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강화하려는 흐름입니다.
조직 문화와 디지털 전환의 변화
겉에서 보기에는 제품과 사업 영역만 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회사를 바꾸는 힘은 내부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세령 부회장은 조직 문화를 더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만들고,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해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는 단순히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회식 문화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신사업을 발굴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려면, 정해진 답만 따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전환 측면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생산량을 예측하고, 원재료 수급을 조절하며, 유통 경로를 최적화하는 등 회사 전반의 효율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절에 따라 김치와 양념류 수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제품이 더 잘 팔리는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별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데이터로 분석하면, 재고를 줄이고 소비자에게 더 빠르게 원하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임세령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평가
임세령 부회장은 오너 3세라는 배경 때문에 주목을 받지만, 그와 별개로 실제 경영 참여와 성과 면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점검하고, 단기간의 화려한 실적보다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신사업을 추진할 때에도 너무 빠르게 확장하기보다, 기술력과 시장 반응, 브랜드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속도와 규모를 조절하는 방식이 특징적입니다. 이런 접근은 때로는 조심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식품과 건강, 바이오처럼 신뢰와 안정성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식품 회사에서 출발해 바이오, 헬스케어, 푸드테크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은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기존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분야를 키워야 하고, 해외에서의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 또한 함께 쌓아나가야 합니다. 임세령 부회장은 이 복잡한 과제를 풀어가면서, 대상홀딩스를 단순한 식품 기업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라이프스타일·헬스케어 그룹으로 확장시키려는 방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