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 역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허옇게 피어오르던 입김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따뜻한 열차 안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으면, 어느새 도시의 풍경은 사라지고 눈 덮인 들판과 산자락이 천천히 스쳐 지나갑니다. 무거운 캐리어 대신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하루 동안 마음껏 걷고 먹고 바라보는 겨울 기차 당일치기 여행은 그렇게 일상에서 살짝 빠져나오는 숨통 같은 시간이 되어 줍니다.

강릉: 겨울 바다와 커피 향이 반겨주는 동해 여행

강릉은 KTX 개통 이후 당일치기 여행지로 자리를 단단히 잡은 곳입니다. 겨울의 동해는 여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잿빛 하늘 아래 넘실거리는 파도와 적막한 해변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줍니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이용하면 약 1시간 40분에서 2시간 정도면 강릉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하루를 넉넉히 즐기고도 저녁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좋습니다.

역에 도착하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경포해변이나 강문해변으로 먼저 향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겨울 바다 특유의 거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차가운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사람 붐비는 여름철과 달리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사진 찍기에도 좋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강릉중앙시장으로 이동해 시장 음식을 즐겨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따끈한 어묵, 수제 어묵고로케, 닭강정, 회와 물회 등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 동행과 함께 여러 가지를 나눠 먹기 좋습니다.

오후에는 안목해변 커피거리로 이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자리 잡아 보세요. 큰 창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와 갈매기, 멀리 보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일부러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죽헌이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 들러 잠시 역사와 문학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좋습니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KTX 표가 빨리 매진되는 편이라, 일정이 정해졌다면 미리 예매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전주: 한옥 지붕 위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는 시간

전주는 겨울에 가면 한층 더 운치가 살아나는 도시입니다. 고즈넉한 한옥지붕 위로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풍경은 사진이 아니어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전주까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남짓 걸립니다. 전주역에 도착하면 버스나 택시로 전주한옥마을까지 이동하는데, 거리도 멀지 않아 당일치기 동선으로 부담이 없습니다.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경기전과 주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무 문살과 기와지붕, 낮은 담장들이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속도가 빨라진 일상과는 다른 ‘느릿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듭니다.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점심때는 전주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 전주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곳곳에 있어 선택지가 풍부합니다. 겨울바람에 얼었던 몸이 뜨끈한 국물과 함께 금세 풀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식사 후에는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날이 맑으면 한옥지붕들이 층층이 겹쳐 보이는 장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전동성당의 독특한 외관과 내부 분위기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한옥마을 안의 전통 찻집이나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 좋습니다.

주말에는 한옥마을이 상당히 붐빌 수 있어, 가능하다면 평일에 방문하는 것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기 좋습니다.

가평·춘천: 눈 내린 강과 숲이 만든 겨울 동화

수도권에서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가평과 춘천 일대만큼 알맞은 곳도 많지 않습니다. ITX-청춘을 타고 용산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면 1시간 안팎의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어, 몸은 가볍게, 하루는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가평으로 향한다면 남이섬과 아침고요수목원을 묶어 다녀오는 일정이 대표적입니다. 가평역에서 시티투어버스나 버스를 이용해 남이섬 선착장으로 이동하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치 다른 계절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눈이 쌓인 메타세쿼이아길과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진으로만 보던 겨울 동화 속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합니다.

점심은 남이섬 주변이나 가평역 인근의 닭갈비, 막국수 맛집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춥고 배고픈 상태로 먹는 뜨끈한 닭갈비는 여행의 만족도를 한층 끌어올려 줍니다.

오후에는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이동해 겨울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면 좋습니다. 해가 진 후 열리는 겨울 빛 축제가 진행되는 날이라면 형형색색 조명이 눈 덮인 정원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다만, 야간 관람까지 즐기게 되면 귀경 시간이 다소 늦어질 수 있으니 열차 시간은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춘천으로 향할 경우, 춘천역에서 소양강 스카이워크로 이동해 탁 트인 강을 내려다보며 겨울바람을 맞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점심에는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에서 철판 닭갈비와 막국수를 함께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이후 구봉산 카페거리에 올라 춘천 시내 야경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코스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습니다.

ITX-청춘도 주말에는 매진되는 경우가 많아, 미리 예매해 두면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가평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주요 관광지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 겨울에도 이동이 비교적 수월한 편입니다.

경주: 겨울 안개 속에서 만나는 천년 고도

경주는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도시지만, 겨울에는 한층 고즈넉한 분위기가 도드라집니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신경주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면, 서늘한 공기와 함께 천년 역사가 고요히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로 약 2시간 10분 정도면 신경주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하므로, 동선을 미리 대략적으로 그려두면 하루를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먼저 대릉원과 첨성대 일대를 걸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눈이 내린 날이라면 낮게 쌓인 눈 너머로 봉분들이 뚜렷하게 드러나, 사진으로 보던 고분의 느낌과는 또 다른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첨성대 주변 겨울 풍경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천천히 걷게 되어 오히려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점심에는 황리단길로 이동해 식당과 카페를 둘러보면 선택지가 매우 다양합니다. 경주 특유의 담백한 한식, 순두부찌개 등 따뜻한 국물 요리는 겨울과 잘 어울립니다. 식사 후에는 황리단길 골목을 돌며 소품샵과 카페를 구경하는 재미가 큽니다.

오후에는 동궁과 월지를 방문해 천천히 둘러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흔히 야경이 유명하지만, 당일치기 일정이라면 해 지기 전의 고즈넉한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롭다면 불국사까지 다녀오는 일정도 가능하지만, 신경주역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고려해 여유 있게 일정을 짜는 것이 좋습니다.

정선: 천천히 달리는 열차 창밖으로 보는 겨울 산하

조금 색다른 겨울 기차여행을 원한다면 정선으로 향하는 정선 아리랑열차(A-트레인)를 떠올려볼 만합니다. 도시 근교와는 전혀 다른, 깊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겨울 풍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한결 느긋해집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A-트레인은 약 3시간 정도 걸려 정선 방향으로 향합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원도 산자락과 계곡, 강을 따라 이어지는 눈 덮인 풍경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여행의 절반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정선에 도착하면 아우라지역이나 정선역 주변의 식당에서 곤드레밥, 정선 한우 등 향토 음식을 맛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방문하면 다양한 장터 음식을 맛보고 시장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 5일장은 매달 2, 7, 12, 17, 22, 27일에 열립니다.

오후에는 병방치 스카이워크에 올라 동강과 주변 산세가 만들어 내는 장대한 풍경을 감상해 보세요. 발 아래로 깊게 내려다보이는 절벽과 강줄기가 주는 아찔함과 동시에, 겨울 산하의 고요함이 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화암동굴을 방문해 차가운 겨울바람을 잠시 잊고 동굴 탐방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A-트레인은 좌석 수가 많지 않아 특히 겨울 성수기에는 예약이 빨리 마감되는 편이라, 최소한 며칠 전에는 예매를 마쳐두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 기차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할 때 기억할 점

겨울 여행은 특히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체감 온도와 피로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기차로 떠나는 당일치기라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미리 생각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 겹겹이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을 준비해 실내와 실외 온도 차에 유연하게 대응합니다.
  • 장갑, 목도리, 모자, 귀마개 등 방한용품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 줍니다.
  • 주말·공휴일 기차표는 서둘러 예매하고, 돌아오는 열차 시간도 여유 있게 잡습니다.
  • 각 역에서 주요 관광지까지 가는 버스·택시, 시티투어버스 정보를 미리 확인해 이동 동선을 간단히 메모해 두면 현지에서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 겨울철에는 일부 관광지의 운영 시간이 짧아지거나 휴장하는 경우가 있으니, 출발 전 공식 안내를 한 번만 확인해도 일정 변경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잠깐의 망설임만 넘기면, 하루쯤은 충분히 비워낼 수 있는 계절이 겨울입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당일치기 기차여행으로, 올겨울에는 눈 덮인 창밖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을 한 번쯤 선물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