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평일 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구 중계를 보게 되었을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점수 차가 벌어질 때마다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랠리가 길어질수록 눈을 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결승전에서 아시아 상위 팀들의 경기력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서, 한 대회 안에서 지금 아시아 배구의 흐름이 어떤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다시 기록들을 찾아보며 정리해보니, 단순한 메달 색깔 이상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배구: 이란의 저력, 중국의 안방 파워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배구는 9월 19일부터 9월 26일까지 열렸으며, 조별리그 후 8강, 준결승, 결승과 순위 결정전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경기, 한 세트마다 세계선수권 못지않은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상위권 팀들의 전력이 촘촘했습니다.
대회 방식과 전체 흐름
남자부는 먼저 조별리그에서 각 나라가 리그전을 치른 뒤, 성적에 따라 상위 팀들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구조였습니다. 조별리그에서는 전력 차가 큰 경기도 있었지만, 토너먼트로 갈수록 한두 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동과 동아시아 팀들의 분위기, 스타일이 뚜렷하게 갈려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메달 경쟁: 이란·중국·일본의 3강 구도
남자부 최종 메달 분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금메달: 이란
- 은메달: 중국
- 동메달: 일본
이란은 이미 아시아 남자 배구에서 강호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다시 한 번 그 위상을 증명했습니다. 중국은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결승까지 올라가며 관중의 뜨거운 응원을 등에 업었습니다. 일본은 아쉽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메달을 지켜냈습니다.
준결승과 메달 결정전 주요 경기
준결승전에서는 네 팀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쳤습니다.
- 준결승
- 이란 3-0 카타르 (25-23, 25-16, 25-18)
- 중국 3-0 일본 (25-20, 25-23, 25-18)
- 동메달 결정전 (3·4위전)
- 일본 3-1 카타르 (25-21, 25-18, 27-29, 25-22)
- 금메달 결정전
- 이란 3-1 중국 (25-19, 25-20, 20-25, 25-14)
특히 결승전에서 이란은 세트 스코어 3-1로 중국을 제압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강한 서브와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중국도 홈 관중의 응원에 힘입어 세 번째 세트를 따내며 반격했지만, 네 번째 세트에서 이란의 집중력을 끝내 넘지 못했습니다.
여자 배구: 개최국 중국의 위용, 꾸준한 일본과 태국
여자 배구는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진행되었으며, 남자부와 마찬가지로 조별리그 후 토너먼트로 이어졌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아시아 여자 배구가 얼마나 빠르고 정교해졌는지 체감할 수 있는 대회였습니다.
대회 구조와 특징
여자부 역시 조별리그에서 각 팀의 기본 전술과 로테이션을 엿볼 수 있었고, 토너먼트에 접어들면서는 실수 하나가 경기 흐름 전체를 바꿀 만큼 세밀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팀들의 디그와 리시브, 동북아 팀들의 블로킹과 조직력이 대비되면서 전술적인 다양성이 돋보였습니다.
최종 메달 결과와 의미
여자부 최종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메달: 중국
- 은메달: 일본
- 동메달: 태국
중국은 홈에서 열린 대회인 만큼, 부담을 실력으로 이겨낸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은 특유의 끈질긴 수비와 조직적인 플레이로 결승까지 진출했고, 태국은 동남아시아 배구의 성장세를 상징하듯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승까지 이어진 주요 경기
토너먼트의 향방을 가른 준결승과 메달 결정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 준결승
- 중국 3-0 태국 (25-21, 25-23, 25-15)
- 일본 3-1 베트남 (25-17, 25-21, 23-25, 25-16)
- 동메달 결정전 (3·4위전)
- 태국 3-0 베트남 (25-19, 25-23, 25-20)
- 금메달 결정전
- 중국 3-0 일본 (25-15, 25-21, 25-21)
결승전에서는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0 완승을 거두며, 서브와 블로킹, 높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은 긴 랠리에서 특유의 끈기를 보여줬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국의 공격력을 막기엔 높이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 배구 대표팀 성적과 아쉬움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의 플레이가 아무리 인상적이어도, 결국 가장 신경 쓰이는 팀은 한국 대표팀입니다. 경기력과 결과를 함께 놓고 돌아보면,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한국 배구가 다시 방향을 정비해야 할 시점임을 보여준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남자 대표팀: 7위에 그친 현실
남자 대표팀은 최종 7위를 기록했습니다. 과거 아시아 상위권에 꾸준히 머물던 시절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성적입니다. 경기 내용을 보면 세트 중반까지는 팽팽하게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잦은 실책이나 리시브 흔들림으로 승부가 기울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지만, 팀 전술 완성도와 세대 교체, 그리고 국제 대회 경험에서 차이가 느껴졌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중동·동남아 팀들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더 이상 과거의 성적으로 현재를 바라보기는 어렵다는 현실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여자 대표팀: 5위, 내용과 과제가 함께 남은 성적
여자 대표팀은 최종 5위를 기록했고, 5·6위 결정전에서 북한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순위를 지켰습니다.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대 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기 내용 자체는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권을 노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제는 중국·일본·태국 등이 분명한 한 단계 위 전력으로 평가받는 상황입니다. 리시브 안정과 센터 라인의 높이, 그리고 장기전에서의 체력 관리 등은 향후 반드시 보완해야 할 과제로 보였습니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구가 남긴 인상
전체적으로 이번 대회를 돌아보면, 아시아 배구가 전반적으로 속도와 파워, 전술의 다양성 면에서 모두 한 단계 올라섰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예전에는 몇몇 강팀만 두드러졌다면, 이제는 중동과 동남아 팀들까지 상위권을 위협하면서, 한 경기 한 경기가 예측하기 어려운 흐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TV 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던 그날처럼, 앞으로도 이런 국제대회가 있을 때면 자연스레 대표팀 일정과 상대 전력을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승패와 상관없이, 한 점을 따내기 위해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한 세대의 변화와 노력까지 함께 느껴지기 때문입니다.